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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ressa 2008. 6. 27. 08:09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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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no de España
(국기) (국장)
표어: Plus Ultra
국가: 왕의 행진
수도 마드리드
40°26′N, 3°42′W
공용어 스페인어
정부 형태 입헌 군주제
후안 카를로스 1세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건국
 • 건국

1516년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505,992 km² (51위)
1.04%
인구
 • 2006년 어림
 • 2005년 조사
 • 인구 밀도
 
44,395,286명 (29위)
44,108,530명
87.8명/km² (106위)
GDP (PPP)
 • 전체
 • 일인당
2005년 어림값
$1조 290억 (9위)
$26,320 (25위)
HDI
 • 2004년 조사

0.938 (19위)
통화 유로 (ISO 4217:EUR)
시간대
 • 여름 시간
CET (UTC+1)
CEST (UTC+2) 
인터넷 도메인 .es
국제 전화 +34
1999년까지는 페소를 사용하였다.
스페인의 자치 지방에서는 바스크어, 갈리시아어, 카탈루냐어, 오크어, 아스투리아스어 등이 사용된다.

스페인 왕국(또는 에스파냐 왕국, 스페인어: Reino de España 레이노 데 에스파냐 듣기 , 갈리시아어: Reino de España, 카탈루냐어: Regne d'Espanya, 바스크어: Espainiako Erresuma, 오크어: Regne d'Espanha, 문화어: 에스빠냐, 통용: 서반아(西班牙))은 유럽 서남부의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나라이다.

스페인은 의원내각제가 결합된 입헌군주제를 시행하고 있다. 유럽 연합에는 1986년에 가입하였으며, 2005년을 기준으로 세계에서는 9번째, 유럽 연합에서는 5번째 규모의 경제를 자랑하는 선진국이다.[1]

목차

[숨기기]

[편집] 국호

스페인 헌법에서는 자국명을 España(에스파냐)로 쓰고 있으나[2], 외교 관계 등에서 사용하는 정식 표기는 스페인어로 ‘Reino de España’(레이노 데 에스파냐, 스페인 왕국)이다.

[편집] 역사

유럽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로마시대 옛 이름인 히스파니아는 로마 제국의 일부로 제국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중세에는 독일의 지배를 이후에는 무슬림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오랜 투쟁과 전쟁 끝에 1492년 기독교도들의 왕국이 다시 이베리아 반도를 차지하게 되었다. 같은 해 콜럼버스가 미대륙에 도착하였으며 이후 절대왕정과 식민지개척을 추진하여 가장 강대한 제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전쟁과 내분 끝에 이러한 전성기는 영원하지 못했으며 20세기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프랑코 독재정권 아래에서 서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독재정권이 물러난 후 많은 경제 발달과 사회적 안정을 이루었으며 1986년에는 유럽 연방에 가입하였으며 현재는 새로운 경재와 문화의 부흥의 시기에 있다고 평가된다.

[편집] 선사시대의 이베리아 반도

약 3만 5천 년 전에 피레네 산맥을 넘어 현재의 이베리아 반도로 크로마뇽인과 유사한 현대적 인류가 진출하여 거주하기 시작했다. 북부 지방의 알타미라 동굴에는 이러한 선사시대의 유적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약 기원전 1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벽화가 남아있다. 아타푸에르카 지방에서 발견된 새로운 유적은 이미 백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유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지역에 살았던 고대의 두 부족은 이베리안과 켈트족이다 이들은 지중해 쪽과 북동쪽에서 남서쪽면에 모여 살았으며 이후에는 대서양 방면에도 거주하기 시작했다. 코임브라, 브라카 그리고 세고비아에는 켈트족의 고대 도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편 이베리안들은 그들의 언어를 이베리아 반도의 가장 긴 강 이름인 에브로에 남겼다. 이베리안들의 후예 중 한 갈래인 베스크족은 피레네 지방의 서부를 점령했다. 기원전 500년에서 300년 사이에는 페니키아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으며 그리스인들도 지중해 연안에 그들의 교역중심지인 식민지 도시들을 건설하였다. 이러한 도시 중 현대에도 남아 있는 것들이 엠푸리아, 마라가 그리고 아리칸테가 있다. 페니카아 인들이 세운 도시로는 카르테지가 있다. 페니키아인들은 이후 로마 제국에 의해 정복당한다. 로마와 대적하여 유명한 한니발의 아버지인 하밀카르 바르카가 세운 카르테지나가 현재까지 도시로 남아 있다. 그의 이름은 또한 당시 도시 중 하나인 바르치노에 남겨졌는데 이 이름에서 바르셀로나가 유래했다.

[편집] 무슬림 시대 (8세기-13세기)

711년 이탈리크의 아랍인베르베르족들이 지브랄타 해협을 건너 스페인 남서부를 정복했다. 이때부터 거의 800년 동안 스페인 지역에서 무슬림 왕국이 존재하였다.

8세기경 북아프리카로부터 건너온 무어족(베르베르 무슬림)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이 정복당했다.(711-718). 이 정복은 무슬림의 우마야드 제국의 확장 활동의 일환이었다. 오스트루리아스, 나바라 그리고 아라곤의 세 작은 북쪽 산간 지방만이 겨우 남아서 독립을 유지하였다.

무슬림 지배 아래에서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은 "성지의 사람들"이라고 불리며 자신들의 종교를 지킬 자유가 주어졌다. 하지만 여러 가지 차별대우를 받아야만 했다. 차츰 이슬람 문화의 영향이 커졌으며 귀족계급부터 딤미(Dhimmi) 신분의 제한과 모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10세기와 11세기에 많은 이들이 개종을 하게 되면서 알안달루스(알달루시아) 주민의 다수가 이슬람을 믿게 되었다.

남부지방에 있는 안달루시아코르도바는 무슬림 스페인의 수도로 중세 유럽에서 가장 크고 부유하며 발달된 도시였다. 지중해 무역과 문화 간 교류가 꽃을 피웠다. 아랍과 북아프리카의 풍부한 지적 유산들이 유럽으로 전해져 왔다. 무슬림과 유대인 학자들은 서유럽의 고전 그리스 문화를 되살리고 발전시키는 데에 기여하였으며 이런 활동을 통해 스페인의 로마화된 문화가 무슬림과 유대문화와 섞여 스페인의 독창적인 문화가 형성되었다. 한편 다른 유럽지방은 중세의 암흑시기로 종교적으로나 문화적, 과학적으로 많이 뒤처져 있었다. 11세기까지 안달루시아는 세비야, 그라나다, 말라가, 코르도바 등 작은 도시국가들로 분열되었고 이들은 외교와 전쟁을 번갈아 가며 생존해 나갔다.

12세기에 이르러서는 종교적 관용 정책이 약화되어 종교적 탄압이 있었으며 이로 이해 북쪽의 기독교 세력들은 13세기초부터 남진하여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를 레콩키스타(Reconquista, 수복)라고 한다. 이때의 스페인지역엔 카스티야 왕국, 아라곤 왕국, 그라나다 왕국, 나바라 왕국의 네 개의 왕국이 있었다. 이때 아라곤의 왕위후계자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왕위 계승 후계자 이사벨의 결혼에 의해 공동국왕이 지배하는 왕국이 성립되고1492년 이들에 의해 마지막으로 존재하던 무슬림 지배지역인 그라나다를 정복함으로써 스페인에서의 무슬림 지배는 종식되고 통일되었다. 1480년대부터는 철저한 로마 가톨릭 국가가 되기 위해 종교재판을 통해 이단을 색출하여 화형에 처하고 개종을 거부하는 이슬람교도들과 유대교신자들을 추방하였다.

[편집] 스페인의 전성기

역사적으로 절대 왕정과 식민지 개척을 가장 먼저 한 나라는 스페인이었다. 한때 전 대륙에 세력이 뻗칠 정도였으며, 당시에는 ‘스페인이 움직이면 전 세계가 두려워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16세기 말엽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식민지 사람들에게 로마 가톨릭을 지나치게 강요하였으며, 후에 칼뱅주의의 영향을 받은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가 반란을 일으켜 독립을 하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무적 함대가 영국에 패배하였다. 당시 국왕인 펠리페 2세는 당시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1세와 결혼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

[편집] 스페인의 쇠퇴

19세기 초에는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에게 점령당하는 등 후진국으로 전락하였으며, 많은 식민지를 영국, 미국, 프랑스 등에 넘겨주기까지 하였다.

[편집] 혼란한 현대사

20세기 스페인는 좌파우파 간의 대립이 있었다. 당시 스페인 사회는 청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전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부가 편중된 사회였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 사회주의 정권인 인민전선이 등장하였고, 이에 두려움을 느낀 보수주의 세력을 등에 업은 프랑코모로코에서 군사반란을 일으키면서, 인민전선과 공화파 간의 스페인 내전이 일어났다. 헤밍웨이조지 오웰 등을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이 인민전선을 지원하여 참전했으나, 결국 내전에서의 승리로 프랑코가 정권을 잡았다. 민간인 학살 범죄 중 하나로 알려진 게르니카 학살나치 독일 공군에 의해 벌어진 것도 이때였다(1937년). 프랑코 독재정권은 유럽 마지막 파시스트 정권으로 불리는데, 집권 후 좌파 학살, 비밀경찰을 통한 감시 등 독재정치로 국민들을 억압했다. 하지만, 1975년 프랑코가 사망한 후에 스페인은 왕정을 복고하였다. 당시 국왕이자 현 국왕인 후안 카를로스 1세의 결단으로 에스파냐에서는 보통선거가 실시, 국민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민주화가 진행되었다. 현재 스페인은 입헌 군주제가 정착된 민주주의 국가이다.

[편집] 정치 제도

스페인은 입헌 군주제 국가이다. 양원제 국회를 갖추고 있으며 입법부가 있어 분권 체제를 갖추고 있다. 국가원수는 국왕이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상하원은 직접/간접 투표에 의해 선출된다. 행정부의 수반은 대통령이며 두 명의 부통령이 보좌한다. 내각의 수반인 장관들은 대통령에 의해 지명된다. 유럽에서 가장 분권화된 자치 지방정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카탈로니아 주바스크 주에서는 별도의 경찰조직이 치안을 맡고 있다.

특히 바스크 지방은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에 의해 독립 운동이 일어나는 지역으로 현재까지도 에타(ETA)에 의한 테러와 게릴라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가장 초기의 에스파냐 헌법은 181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1975년 죽은 후 1977년 보통선거가 이루어지고, 1978년헌법이 제정되는 등, 서유럽에서는 가장 늦게 민주주의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로 17개의 자치 주와 2개의 자치 시가 서로 다른 자치권을 누리며 일종의 연방 국가를 구성하고 있다.

독재자 프랑코 시대의 단절에서 벗어난 후에는 1982년 나토에 가입하였으며 현재는 유럽연합의 가입국이다.

[편집] 지리

세계에서 51번째로 큰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 면적은 50만 4,782㎢이다. 본토는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외에 지중해발레아레스 제도와 북아프리카 북서쪽의 카나리아 제도, 두 개의 자치 시인 세우타, 멜리야가 있다. 본토의 1/3 정도가 산지이며 평균고도 해발 660m 정도로 스위스 다음가는 고지로 이루어졌다. 북부에는 피레네 산맥, 대서양 연안지방에는 칸타브리야 산맥, 남부에는 모레나 산맥네바다 산맥, 중앙부에는 메세타 고원이 있다.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은 비옥하여 옛날부터 포도, 오렌지, 올리브 재배가 유명하며 이슬람의 지배를 오래 받아 아직도 아랍적 색채가 강하다.

세우타와 멜리야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스페인령으로 모로코와 인접하여 있다. 한편 지브롤터 해협의 중요 지점인 지브롤터는 영국령이다.

과디아나 강 하구, 왼쪽은 포르투갈, 오른쪽은 스페인
과디아나 강 하구, 왼쪽은 포르투갈, 오른쪽은 스페인

서쪽으로는 포르투갈과 접하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피레네 산맥을 경계로 프랑스안도라 공국과 접하고 있다. 또한 피레네 근처에 있는 인구 약 1200명 규모의 리비아(Llívia)라는 마을은 프랑스 영토에 둘러싸여 있다.

[편집] 언어

스페인의 언어.
     스페인어      카탈루냐어, 공용어      바스크어, 공용어      갈리시아어, 공용어      아란어, 공용어(오크어 방언)      아라곤어, 비공용      아스투리아스레온어, 비공용

스페인 영내에서는 스페인어공용어이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는 스페인어와 함께 그 지방의 언어를 공용어로 삼기도 한다.

비록 공용어의 지위를 갖지는 못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이베리아로망스어군에 속하는 아스투리아스레온어, 에스트레마두라어, 아라곤어 등 일부 언어가 살아남아 소수의 사람들이 사용한다. (아스투리아스레온어는 공용어가 아니지만, 아스투리아스 지방정부에서는 주민들에게 아스투리아스어 사용을 권장하고 있으며, 지역내에서 공용어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편집] 주민

스페인인이 다수를 차지하며 아랍인프랑스인, 포르투갈인도 존재한다. 스페인은 역사적으로 이슬람 세력의 영향이 있었다. 스페인에서 가장 흔한 성씨는 가르시아이다.

[편집] 종교

로마 가톨릭이 94%로 다수를 차지하며 이슬람교는 그 다음이다. 개신교도 소수 존재한다.

[편집] 문화

남부 스페인인은 정열적이고 밝다고 알려진 스페인 사람들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북부 스페인인은 이와 다른 경향이 강하다.

오래된 경기인 투우는 전세계�으로 유명하며,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집시들에게서 유래했다고 하는 플라멩코라는 춤과 노래도 유명하다.

[편집] 관습

여름일 때 스페인의 낮은 매우 덥습니다. 때문에 시에스타가 불가피합니다.
여름일 때 스페인의 낮은 매우 덥습니다. 때문에 시에스타가 불가피합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시에스타(스페인어: La Siesta)가 있다. 시에스타는 낮 동안에 잠시 일터에서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스페인의 고유 관습이다. 유럽의 관념에서 스페인의 시에스타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식되어 왔다. 많은 상점과 박물관조차 이 시간에는 문을 닫으며 거의 대부분의 사업장이 오후 중 두세 시간 정도 문을 닫는다. 그러나 최근 스페인 의회에서 시에스타를 관공서에서만큼이라도 금하겠다는 조치를 발표하여 스페인 전역에서 반발 여론이 급증하고 있다.

또한 소도시에서는 저녁에 한두 시간 정도 산책(스페인어: Paseo)을 하는 것이 흔하여 대도시에서도 이런 모습을 가끔가다 볼 수 있다.

스페인의 저녁 식사 시간은 유럽에서도 제일 늦다. 대개 동부 지방에서는 밤 9시, 서부 지방에서는 밤 10시에 저녁 식사를 한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밤 문화가 흔하며 댄스 클럽이 소도시에서도 아주 흔하다. 대개 이런 클럽은 자정에 문을 열고 새벽까지 영업을 한다. 여름의 마드리드에서는 새벽 1시나 2시 즈음에 있는 음악 공연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다.

[편집] 지방색

각 지방 출신에 대하여 스페인 사람들은 강하게 인식하는 편이다. 출신 지역이나 국가와 같이 개인의 기본적인 면에 대한 인식은 여태껏 스페인의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가장 악명 높은 바스크나 카탈루냐, 갈리시아 주의 경우에는 각 주의 독특한 감정이 극도로 팽배하다. 다수의 바스크인과 카탈루냐 출신의 국수주의자들은 스페인이 통합되기 이전의 개별국가로 돌아가기를 열망한다. 바스크는 테러와 같은 폭력적인 행위를 통하여 이를 저지르고 있다. 사실 대다수의 바스크 인들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꿈을 성취하려 한다.

이외에도 안달루시아, 아스투리아스, 나바레, 발레아레스 제도, 발렌시아 주 등 많은 주에서 이와 비슷한 형태의 지방주의가 나타난다. 각각 모두 지방색의 특색이 달리 나타나지만 바스크나 카탈루냐보다는 민족주의자들이 덜한 편이다.

[편집] 스포츠

축구가 가장 인기 있다.

[편집] 식습관

스페인 사람은 하루에 식사를 다섯 번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 데사유노 : 조식. 일어나자마자 빵 등을 먹는다.
  2. 메리엔다 메디아 마냐나 : 가벼운 아침 식사. 오전 11시 즈음 샌드위치 등을 먹는다.
  3. 알무에르소 : 중식. 하루의 중심으로, 오후 2시 즈음 정찬으로 먹는다.
  4. 메리엔다 : 가벼운 저녁 식사. 오후 6시 즈음 간식을 먹는다.
  5. 세나 : 저녁 식사. 오후 9시 즈음 수프나 샐러드 등을 먹는다.

[편집] 요리

이 부분의 본문은 스페인의 요리입니다.

[편집] 주류

스페인은 이탈리아프랑스와 함께 유명한 포도주 산지이다.

[편집] 군사

스페인 군(스페인어: Fuerzas Armadas Españolas, 영어: Spanish Armed Forces)은 육군과 해군, 공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통솔권은 스페인의 국왕인 후안 카를로스 1세에 있다. 전체 스페인 왕국의 통합력과 왕권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군병력이 존재한다. 스페인군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참여하는 군 중 하나이며 유럽 연합의 군사 활동에도 참가한다.

[편집] 참고 문헌

[편집]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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